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의 전통주 (문단 편집) ==== 광복 이후 ==== 광복 후 [[미군정]]이 약 3년여간 실시되고 이후 남한 지역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, 미군정과 한국 정부 모두 전통주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[* 미군정이야 남의 나라이니 관심이 있을리 만무하고, 우리나라 정부 같은 경우도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과 식량난의 상황에서 생필품도 아닌 전통주에 특별히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. 거기다 전통주는 제조할 때 소비되는 쌀의 양이 엄청나다.], 오히려 식량 수급 사정 개선과 물가 안정 그리고 세수 확보를 위해 엄격한 미곡 유통 통제와 강화된 주세법을 실시하였다. 또한 이 시기 쌀 수급 상태와 시장 소비력이 타격을 입으며 전통주 업계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. 이런 20세기 전반부의 고된 역사 속에서 한국 시장을 파고든 [[희석식 소주]], 부가물 [[라거]], [[삼배증양청주]]에 맞선 힘겨운 경쟁을 지속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하던 전통주들은 6.25 전쟁으로 다시 한 번 큰 타격을 입었다. '''[[6.25 전쟁]]으로 대부분의 생산 설비가 파괴되었으며 전통주 업체들의 기술자들과 경영자들, 그리고 지역 가양주 계승자들이 사망하거나 납북당하면서 남한 지역 내 전통주는 큰 타격을 입었다'''. 특히 그 중 [[청주(술)|청주]]와 [[증류식 소주]]와 같은 고급 가양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는데, 이를 만들고 마시던 이들은 주로 지역 유지 계층의 옛 명문가 사람들이었고, 이들은 인민군과 중공군 그리고 그 앞잡이들의 우선 살해/납치 목표였기 때문이다. 살아남은 사람들도 피난 과정에서 경제적/사회적으로 몰락하여 더 이상 술을 제조할 수 없게 되거나 누룩과 제조 장비를 비롯한 생산 설비와 비법을 잃어버린 경우가 제법 존재한다. 또한 극한 전시경제 체제로 원료인 [[쌀]]의 확보조차 어렵게 되어 양조에 쌀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. 전후 [[대한민국 제1공화국|제1공화국]]과 [[대한민국 제2공화국|2공화국]]의 열악한 경제사정 속에서 지속되는 전통주 규제를 거치며 전통주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. 쌀 자체가 부족하여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 판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쌀이 많이 드는 전통주 제조를 허가 할 상황이 아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